해피투데이

문화
count
920
살아 있는 부엌 - 태양과 바람이 만든 트라파니의 소금과 누비아의 마늘

살아 있는 부엌

글과 사진  류지현



태양과 바람이 만든 트라파니의 소금과 누비아의 마늘


직진을 해야 했는데 왼쪽으로 들어섰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다시 돌아 나가라고 난리다.
하지만 어차피 소금박물관을 보러 가는 길이었으니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염전을 그냥 두고 떠날 이유는 없다.
염전 둑 사이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눈동자를 굴리며 찾아보는데 어디 하나 뚫려 있는 곳이 없다.
철조망이 빈틈없이 염전을 따라 둘러쳐져 있다.
코앞까지 와 염전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에 실망하는 찰나, 앞쪽으로 빼꼼 열려 있는 철망 문 하나가 보인다.
심봤다!


소금밭 속 두루미는 참 우아하게도 걸어 다니는데 바람이 만만치가 않다.
햇빛 가리개용 모자는 진작 벗었다.
눈부신 햇살과 앞으로 걸어 나가기도 벅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이 태양과 바람이 트라파니(Trapani, 이탈리아 시칠리아주에 있는 도시)의 소금을 만드는구나 싶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풍차들은 바닷물을 채우는 데 쓰이는 거죠.
이 풍차는 1800년대에 지어진 거예요.
돌의 종류가 두 가지인 거 보여요?
이 하얀빛이 나는 돌은 파빅나나(Favignana)라는 섬에서 온 거예요.
바다 중간의 섬에 있는 돌이라 짠물과 짠바람에 강해서 풍차처럼 중요한 걸 만드는 데 쓰고요.
여기 보이는 이 노란빛 나는 돌은 저 아래 동네 마르살라(Marsala)에서 가져온 거예요.
이건 좀 더 물러서 소금밭을 만드는 용으로 쓰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고 지식이에요.”
햇볕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엔조가 하얗고 반듯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일하기는 힘들어도 건강하고 맛있는 소금을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게 자랑스럽단다.


트라파니의 염전에서는 6월에서 9월 사이에 소금 수확을 두 번 정도 한다.
염전에 바닷물을 채우고 나면 나머지는 바람과 태양의 몫이다.
채취한 소금은 작은 언덕처럼 쌓아 올린 후 말린다.
그리고 기와를 덮어 비 올 때를 대비한다.
중간 중간 눈에 띄던 기와가 장식인가 싶었는데, 소금 지붕인 것이다.
기와가 덮인 소금 언덕이 어느 정도 마르고 나면 바깥 소금 자체가 딱딱하게 굳어 보호막 역할을 한다.




소금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엔조는 여전히 동네 이곳저곳을 바쁘게 움직인다.
5~6월은 염전의 옆마을 누비아(Nubia)에서 마늘을 수확하는 시기다.
밭에서 마늘을 따서 보관 준비를 하기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단다.
아니나 다를까, 염전 한쪽에 마련된 가판에는 엔조의 소금과 함께 엮인 마늘이 놓여 있다.
머리를 땋듯 예쁘게 땋은 마늘에 관심을 보이니 엔조가 선뜻 지인을 소개해주었다.
“저기 높은 교회 종탑 보이죠? 일단 저기를 향해 가요.
마을에 들어서서 저 종탑을 지나 바로 돌면 길이 하나 나오는데 쭉 가다 보면 포장 안 된 골목이 나와요.
그 안으로 들어가서 창고에서 일하고 있는 플라비아를 찾아요.”


엔조의 길 안내는 내비게이션보다 세밀하지는 않았지만 길을 잃지 않고 누비아에 찾아갈 수 있었다.
정말 이렇게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삶을 되돌아보면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아온 시간이 더 길지만, 내비게이션에 익숙해진 지금은 오히려 이런 길 안내가 어색하다.
그가 일구는 전통처럼 내비게이션 없는 길 찾기는 일상에서 멀어지며 점점 낯설고 어려운 일이 돼간다.
마늘로 유명한 마을이라니.
누비아에 들어서면 마늘 냄새라도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허무맹랑한 상상일 터. 
띄엄띄엄 보이는 ‘마늘 팝니다’라는 표지판을 보지 못했다면 길을 잘못 들어선 거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분명 3시를 넘어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플라비아네 창고의 셔터가 굳게 닫혀 있다.
인기척에 밖으로 나온 이웃 할아버지 한 분이 사정을 듣더니 걱정 말라며 손사래를 친
다.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플라비아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자 굳게 닫혔던 셔터가 슬슬 열린다.
뜨거운 열기를 피해 셔터를 닫은 채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엮은 마늘처럼 긴 머리를 옆으로 땋아 내린 플라비아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는다.
그녀의 창고에 들어서자 드디어 큼큼하면서 알싸한 마늘 냄새가 코끝에 가득 찬다.
플라비아는 수확한 마늘을 누비아의 전통 방식으로 엮는 일을 하고 있다.
누비아의 마늘은 보통 12쪽 마늘인데 알리신 함량이 높아 향과 맛이 강하다.
속껍질에 붉은빛이 돌고 알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알이 작아 햇볕에 2~3일 바짝 말린 후 보관하면 7~8개월도 거뜬히 난다고 한다.
누비아의 빨간 마늘(Aglio Rosso di Nubia)은 이탈리아 정부의 특산품 목록에도 올라와 있을 정도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특별한 마늘인 만큼 옛 방식대로 마늘대를 엮어 보관 판매한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푸른 마늘밭이 누런빛을 더 많이 띠기 시작하면 누비아의 농부들이 바빠진다.
마늘대가 완전히 다 마르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확한 마늘은 마늘대 쪽에 물을 뿌려 담요로 덮은 후 하룻밤 놔둔다.
엮기 좋게 유연해진 마늘대를 비슷한 크기의 마늘 대가리끼리 분류한다.
4~5개의 마늘 대가리를 모아 잡고 마늘대를 그 주변으로 돌려 고정한다.
남은 마늘대는 머리 땋듯이 세 갈래로 나눠 땋는데 한 번 땋고 마늘 2대를 더하고, 또 세 갈래로 나눠 땋는 것을 반복한다.
디스코 머리를 땋는 것처럼 옆 머리카락, 아니 옆 마늘대를 연결하는 것이 포인트다.
“이렇게 엮은 마늘을 엔조의 소금밭에서 말리면 돼요.
엔조의 소금밭 햇볕이 제일 세거든요.”
잔뜩 쌓인 엮은 마늘 주변에는 대가리만 쌓아놓은 마늘도 보인다.
마늘대에서 떨어지거나 대의 상태가 엮기에 좋지 않은 마늘은 이렇게 따로 모아놓고 쓴다고 한다.
일부는 바로 먹고 나머지는 알리오 소토 올리오(Aglio Sott’olio, 기름에 재운 마늘)를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다고 한다.
플라비아식 알리오 소토 올리오 만드는 법을 살펴보자면, 우선 식초와 1:1로 섞고 소금을 넣어 끓인다.
“꼭 엔조의 소금을 넣어야 해요.
농담이 아니라, 슈퍼에서 파는 소금은 맛이 달라요.
엔조의 소금은 진짜 바닷소금이니까요.”


끓는 물에 마늘을 넣고 마늘이 물 위로 뜨면 건져서 물기를 말린다.
멸균 처리된 유리병에 마늘을 가득 담은 뒤 원하는 허브는 뭐든 넣고 올리브유를 가득 부어 뚜껑을 잘 닫는다.
과일 잼을 만들 때처럼 20분쯤 물에 중탕으로 끓이고 밀봉하면 몇 개월이고 두고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저장 음식이 완성된다.


플라비아는 올리브유에 재운 이 마늘을 출출할 때 하나씩 꺼내 빵과 먹는다고 한다.
마치 좋아하는 사탕이라도 꺼내 먹듯이 손가락으로 마늘을 꺼내 먹는 시늉을 하는 플라비아를 보고 있자니 매일 아침 마늘장아찌를 한 톨씩 빼먹던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시칠리아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올리브유에 마늘을 재워 먹는다면, 한국에서는 간장이나 식초에 넣어 보관한다.
지구 반대쪽에 위치한 이 두 나라는 이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마늘 문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지구 위 수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활용하고 응용하는 가운데 문화는 풍요로워진다. 





필자소개 류지현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연구하는 디자이너다.
친환경부엌 디자 인 프로젝트 연구차 그가 거주하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포르 투갈 등 유럽의 여러 나라와 페루, 쿠바,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다양한 부엌 을 방문해왔다.
디자인 관계상 다할 수 없는 긴 이야기는 단행본 <사람의 부엌>에 담았으며, <해피투데이>를 통해서는 책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고 있다.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내자> 프로젝트와 관련된 더 많은 정보는 savefoodfromthefridge.com에서 찾을 수 있다.

목록으로